안녕?!
어느날 새벽, 문득 10년 정도 쓰고 있던 가계부를 봤어.

첫 가계부에 입력한 내용은 내 인생에서 2번째로 받은 대출내역이었어.
처음은 학자금 대출이었어. 그 대출을 갚기 위해 군대 전역하고 2년동안 3개 회사를 동시에 다니며,
1년 조금 넘는 시간만에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지.

그 2년이 힘들었을까?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어서, 그간 모았던 천만원을 들고 1년동안 여행을 다녀왔어.
생각해보면 정말 재미난 경험이었는데, 그 여행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땐, 다시 빈털털이였지.
그래서 월세라도 얻을려면 월세보증금을 빌렸어야 했었어.
그렇게 가계부에 대출금을 적어두고보니, 처음으로 본 마이너스 8자리 숫자는 생각보다 무서웠어.
그래서 그렇게까지 빈곤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나름 열심히 갚았어.
2년정도만에 대출을 다 갚고나서 늘어나는 통장잔고를 보며 힘도 냈었지.

그러다가 전세집이라도 구해볼까 해서 2번째 대출을 받은지 5년만에 다시 9자리 대출을 받게 되었지.
3번째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숫자가 너무 커서 그랬을까? 처음 대출을 받았을 때의 그 무섭다는 생각은 별로 들진 않았어.
5년동안 그래왔던 것 처럼 갚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다시 4년이 지났어.
위의 그래프처럼 9자리의 대출금은 어느새 많이 줄었고...
그 사이 연애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자동차도 새로 한대 장만하고, 돌아보면 딱히 나쁘지 않았던 시간이었어.

그런데 전세계약을 연장하면서 문제가 조금 생겼어.
전세계약을 막 연장한 시점에 전세집에 저당이 잡혔고, 전세반환보증 부터 전세대출이 모두 막혀버렸어.
뉴스에서나 보던 전세사기가 나에게도 일어난건가하며, 걱정의 1개월을 보냈던 것 같아.
그래도 적금을 해지하고 급한대로 신용대출과,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해결을 했지.

그리고 나서 다시 몇개월이 흘렸어.
그 동안 남아있던 주택청약이랑 연금을 해약해서 은행에서 빌린 신용대출도 갚았어.
그게 지금의 그래프의 모습이지.

그래프를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참 열심히 살았던 10년인 것 같아.
이제 정말 쉬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로...
사실 문득 든 생각은 아니긴 하지. 벌써 반년째 하고 있던 생각이었으니까...
정신과도 다녀봤어. 그냥 적당한 우울증이니 약을 먹어보라고 주길래 먹어봤지.

약을 처음 먹은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거야.
약을 먹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 기억이 끊긴상태로 새벽에 술까지 먹었나바.
그리곤 자살소동을 벌렸지. 그 와중에 고양이를 챙긴 것 보면 나도 집사가 다 되었나봐. ㅎㅎ

새벽에 전화를 받아준 고마운 사람과, 그 새벽에 집까지 찾아와 준 사람이 있었기에 소동으로만 지나간 것일거야.
정신과에선 약 부작용이라고 했어. 그리곤 약 먹지말고 그냥 버텨보자고...
그 뒤로 드문드문 가던 병원도 더이상 가지 않게 되었어.

J 답게 나의 계획과, N 답게 나의 미래에 대해 한번 상상을 해봤어.
난 저 그래프에 아직 남아있는 대출을 다 갚고나면, 또다시 대출을 받을거야.
서울에선 대출없인 내가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 때 받는 대출금은 아마 10자리 숫자가 되겠지.
지금처럼 쉽게 갚을순 없을거야. 아마도 수십년은 걸리겠지.
대출금을 다 갚고야 말겠어. 라는 목표는 감히 단기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일거야.
어느 순간 목표가 없어졌어.
아니지, 목표라기 보단 삶의 의욕이 없어졌어.
미래를 아무리 계획하고 상상해보아도, 그 미래는 지난 10년의 무한 반복일거고, 그 반복되는 삶에서 난 혼자겠지.
목표도, 의욕도, 즐거움도 없어졌어... 그냥 모든것이 의미없고 무기력해.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점점 없어지고 있고...
얼마전엔 부모님하고도 의절했는데, 누가 남아 있겠어? ㅎ
다른 사람들이야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 당연히 멀어질 수 있겠지만, 부모님은 좀 의외였긴 했어.

정신적인 문제와, 한밤의 자살소동, 그리고 전세집 문제에 대해 부모님께 말을 했었고,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문자메시지가 왔었지.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되니 서울에 한번 올라갈까?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대화는 자동차가 오래되었으니 차를 바꿔달라는 말로 끝이 났어.
뭐 간헐적으로 급하게 수십에서 수백만원이 필요하다는 이벤트는 자주 있었고, 그때마다 별다른 생각없이 드리거나, 아니면 그냥 넘어가긴 했는데...
그 날은 내 상태가 그 이벤트를 받아들이기가 조금 쉽지 않았어.

그래도 내가 언젠가 자동차를 바꿔드리겠다 약속도 했었고, 부모님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테니 크게 티내지 않고 말했어.
내 걱정도 된다고 하고 자동차도 사야하니 다음주에 서울 올라오라고...
그리고 보험을 한개 해지해서 자동차 살 돈도 마련했어.

근데, 한참뒤에 온 답장은 다음주는 냉장고를 중고거래해야하기 때문에 올라올 수 없데.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된다는 건, 그냥 자동차 바꿔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의례적으로 한 말인가 싶더라구.
조금은 더 슬퍼졌기에 목소리 들으며 대화하기는 힘들것 같아 부모님 전화를 차단하고, 문자로 그럼 그 다음주에 올라오라고 말했지.
조금이라도 부모님이 나에 대해 마음을 쓰고 있다면, 2주 후에라도 보는게 뭐 어떻겠어.
근데 마지막 답장은 서울에 올라가는 것은 조금 힘들고, 그냥 내가 아반떼 새차를 사서 가지고 오면 안되겠냐였어.
그리고 끝에 중고차는 안된다라는 말과 함께... ㅎㅎ

그래서 더이상 답장도 하지 않고 의절해버렸지뭐야 ㅎㅎ
물론 그 뒤로 마치 빚쟁이 찾는 것 처럼 회사에 전화해서 나를 찾아대고, 서울에 살고 있는 사촌형을 동원해서 집까지 찾아왔길래 확실하게 말했지.
나 없는 셈 치고 사시라고, 나도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부모님한테 처음 내 상황을 말하면서 부모님보다 먼저 죽진 않겠다 약속했는데, 무의미한 약속이 되어버렸어.
그렇다고 지금 삶을 마무리하기엔 날씨가 너무 춥더라구.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은 모두 추운날씨에 실행하기엔 고통스러운 방법이니까...

그래서 날씨가 조금 따듯해지면 쉴려고, 지금은 이렇게 이것저것 정리하고 남길건 남기고 있어.
AWS가 카드결제가 끊어지자마다 서비스를 중단시킬정도로 매정하진 않을것이라 믿고...
그래도 혹시 몰라 이 서버 한개만 남기고 다 없앨거야. 수십만원이 미결제되는 것보다 수만원이 미결제되는게 좀 더 오래 남아있겠지. ㅎㅎ

카카오톡이나 소셜미디어 같은 계정은 다 정리했어.
갑자기 떠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흔적이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해서...
그리고 휴대전화에 연락처도 다 정리했어.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당황하지 않게 ㅎㅎ
정리하고 나니 100여개가 안되네.

집에 물건들은 생각날때마다 버렸더니 벌써 200리터는 버린거 같아.
그래서 집이 엄청 휑해졌어! ㅎㅎ

은행계좌들도 한개만 남기고 다 정리하고 있는중인데 조금 시간이 걸리고 있어.
회사는 똘똘한 동료가 3명이나 생겼으니 천천히 인수인계하고 있고...
미니톡은 친구녀석이 운영해주기로 했고...
그리고 하고 싶은거 있으면 다 해보려고 했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아! 시티즈 스카이라인 2는 꼭 해보고 싶은데... PC나 한개 사야겠어. ㅎㅎ

회사로부터 빌린 돈은 퇴직금으로 갚을 수 있으니까 남은 빚은 없고,

자동차는 노리는녀석이 많은데,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엔 자동차가 꼭 필요해서...
사실 옥룡이에겐 쏘카를 빌려보겠다 말을 했는데 남에게 피해주는 것 같아 그건 좀 그래.
어쨋든 자동차가 조금이라도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스난로를 준비했어.
번개탄보단 냄새나 연기는 좀 덜나겠지 ㅎㅎ
혹시라도 자동차가 무사하면 자동차는 옥룡이나 지욱이 중 가위바위보 이기는 사람이 가지는 걸로 하자. ㅎㅎ
장소는 아직 정하지 못했으니, 그건 정하면 다시 남기는 걸로...

현금성 자산들은 모두 토스뱅크에 모아둘거야!
생명보험이 한개 있는데, 3천만원짜리야.

전세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집주인이 착해서 돌려준다면 전세금은 2억 5천 2백만원이야!
전세보증보험도 가입하긴 했는데 제3자가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현금성자산들은 모두 우리 고양이 '봄이' 에게 주기로 했어.
봄이를 데려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